언론은 민주시민들의 전두환 정권 타도투쟁과 직선제 개헌투쟁이 불붙어 가자 느닷없이 금강산댐 소동에 적극 나섰다. 계기는 1986년 10월 30일 당시 이규효 건설부 장관의 충격적 발표였다. "2백억 톤의 물을 담은 북한 금강산댐이 붕괴될 경우 화천 등 5개 댐을 순식간에 차례로 파괴하면서 한강 하류 전역을 급류가 강타, 강원 경기 서울을 포함한 한반도의 허리 부분을 황폐화시키는 실로 상상을 초월하는 재앙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이른바 "금강산댐" 오보의 시작이었다. 조선, 동아, 중앙일보 등 모든 신문들이 "63빌딩의 절반 가까이 물에 잠긴다.", "남산 기숡까지 물바다", "원폭 투하 이상의 피해" 등 전두환 정권의 발표에 장단을 맞추어 해설, 사설 등 지면을 총동원했다. 전국 곳곳에서 "이대로 당할 수 없다" 며 규탄 시위가 줄을 잇고 "평화의 댐"을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신문과 방송은 할아버지 쌈짓돈은 물론이려니와 어린이 저금통까지 털며 성금 참여를 독려했다.
특히 조선일보는 보도 첫날부터 대응 댐 건설을 주장했다. 조선일보 사설 '가공할 금강산댐, 이독제독의 적극적 대응책을'은 "댐을 건설하여 충분한 저수 능력을 갖추는 것도 적극적인 대처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평화의 댐은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미국의 워싱턴포스트는 "평화의 댐은 불신과 낭비의 사상 최대의 기념비적 공사"라고 비꼬았다. 그리고 1993년 6월 감사원이 전면특감에 들어가면서 평화의 댐은 완전히 조작된 정보의 꾸며진 허구임이 드러났다. 알다시피 전두환 정권이 엉터리 금강산댐을 들고 나온 배경은 1986년 대통령 직선제 요구로 뜨겁던 개헌 정국을 반전시키기 위한 정략적 목적이었다. 당시 학계에서 "정부의 발표 중 댐 높이나 저수량은 과학성과 현실성을 도외시한 채 발전용량을 근거로 무조건 역산출한 것"이라는 문제제기도 나왔지만 조선 동아 중앙일보는 이를 묵살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