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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립투기'에 해당되는 글 1건
2008/07/25 15:45

 
역사상 최초의 자본주의적 투기는 '네덜란드인의 튤립 투기'라고 한다. 16세기 중반 터키에서 전래된 튤립은 유럽인들 사에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17세기 초반에는 귀족과 부호들 사이에 희귀 튤립 변종을 소유하는 것이 유행돼 꽃 값이 솟구쳤다. 마침내 1630년대 초반 이 열기는 가격상승 기대심리가 작용하면서 투기적 광기로 변질됐다. 1624년 '황제튤립'은 당시 암스테르담 시내의 집 한 채 값과 맞먹는 1,200 플로린에 거래됐다. 서열이 매겨진 다양한 변종 튤립 가운데 칠더급 튤립은 1635년 1,615 플로린까지 치솟았다. 당시 네덜란드에서 네 마리 황소가 끄는 수레 값이 480 플로린이었고, 1천 파운드의 치즈가 120 플로린이었다. 튤립 값은 상승세를 멈추지 않아 1636년에는 희귀한 변종 튤립 한 뿌리를 사기 위해 4,600 플로린에다 두 마리의 회색 말과 마구가 완비된 마차 한 대를 더 얹어 주어야 했다.
 1630년대 네덜란드의 경제적 상황은 투기적 안락감이 퍼질 수 있는 아주 좋은 조건이었다. 스페인으로부터 군사적 위협이 사라졌고, 네덜란드의 직물산업은 호황을 맞고 있었으며, 자카르타 지역을 차지한 동인도회사의 주가는 최고의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당시 1인당 국민 소득이 가장 높았던 네덜란드인들은 앞 다투어 교외에 대저택을 짓는 등 호황을 만끽했고, 풍요와 오만에 젖은 네덜란드인들은 과시욕과 더 큰 부를 안겨 줄 대상을 찾았는데, 그것이 바로 튤립이었다.
 튤립은 1635년 'Semper Augustus'라는 희귀종이 6,000 플로린에 매각됨에 따라 최고가를 기록했다. 튤립의 최고가 6,000 플로린은 당시 네덜란드 인의 평균 연간 수입 150 플로린의 40배로,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약 6억원의 수준이 된다.
 마침내 1637년 2월 튤립 시장이 붕괴했다. 튤립 거래의 중심지였던 하를렘에는 부도가 줄지어 발생했다. 튤립 시장의 불안은 1년 뒤인 1638년 5월까지 지속됐다. 당시 네덜란드 정부는 매매가격의 3.5 퍼센트만을 지급하는 것으로 모든 채권, 채무를 정리하도록 명령하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했다. 1,000 길더를 받기로 하고 튤립을 팔았던 사람은 35길더만을 받을 수 있었다.
 오늘날 네덜란드가 튤립으로 유명한 것은 이미 400년 전부터 튤립 광풍이라고 할 만큼 다양한 색깔과 품종의 튤립이 개발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네덜란드에서만 튤립 버블이 생겨난 것일까? 계속된 전쟁으로 많은 귀족들이 죽은 네덜란드에서 부와 사회적인 지위의 상징이 됐으며, 상공업으로 부를 축적한 새로운 시민계급들이 서로 앞 다투어 더 귀하고 특이한 튤립을 소유하려고 애썼기 때문이다.

- 세속 경제학 -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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